미국을 다녀오고 셋째 출산전,
이제는 고령에 치매가 온 외할머니와
몇 년 전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
연락받고 연락만 주고 받은
사촌 성희
내가 체육관이 힘들어서
동대문에서 일할때, 남편과 옷을 보러온 걸 마주쳤었다.
배달을 하는데 누가 부르더라
"야, 공현욱" 목소리만 듣고도 10년 넘게 못 봤어도 알아차렸다.
이렇게 갈 걸 알았으면, 이야기 조금 더 할껄.
옆에 쭈빗하게 인사했던 남자. 그 놈이 가해자였다니.
"내 사촌, 얘도 운동하고 용인대 나왔어" 신나서 이야기 하던 게 생각난다.
어릴때, 서로 성격이 세서 많이 싸웠는데.
혈육이라 그런지 곧잘 풀리고 곧잘 놀았다.
내 기억속에 너는 쾌활하고 활달하고 항상 주장잘하던 애였는데,
우리집 외가에 몇 명은 유전적으로 뭐가 있는지. 애를 낳으면 180도 바뀐다.
엄청 헌신적으로. 내 여동생도 그렇고.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.
기존의 성격을 누르고 인내도 엄청 잘한다.
근데 그게 나도 그 나이가 되고 보면 잘하는게 아니라. 눌러놓은 것 같긴하더라.
병난거 보면...
장례식이 아기(막내; 셋째) 출산 전에 진행되었고.
그래서 가지는 못하고 전화로 연락만 했다.
잘 안우는데 40대가 되면서 뭐가 망가진건지. 아니면 이상한건지.
애처럼 울었다.
그 뒤에 외가의 장손녀석(성희의 남동생)을 만나
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, 아직 진행 중인 소송 이야기도 많이 했다.
참... 이럴때, 내가 뭐하며 살았다 싶더라.
지금 나이면 20대부터 일했으면 동생들보다 잘 벌던 아니든 뭐라도 했을텐데.
운동하고 태껸 연구한다고 다니다 보니
내 앞가림하기 급급했다.
정신이 차리고 숨 좀 돌리니 10년 넘게 지나있었고,
꼬물거리던 첫째 놈은 이제 나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서 항상 귀찮은 체한다.
남편 녀석...
운동하는 사람이면 최소한 가오는 가지고 살아라.
몇번 보지 못한 조카지만,
커가면서 여러 내용 보면 충격은 이녀석이 젤 클꺼다.
조카 생각해서 말을 아끼는 뿐. 제발 인간답게 마무리 지어라.
통화내용... 진짜 할 말이없다.